별점 : ★★★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인 10·26 사건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을 IPTV로 시청하였다. 너무나 유명한 사건인 만큼, 그동안 수많은 미디어에서 각자의 시각으로 다루어 왔기에 또 새로운 재미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던게 사실이다.
전작 『마약왕』에서 부침을 겪었던 우민호 감독은 본인의 장점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시대극으로 복귀하여 언뜻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쫀쫀한 갈등구조를 훌륭하게 펼쳐냈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어느 하나 극적이지 않은 인물들이 없는 캐릭터들의 에너지를 영리하게 분산시켰다. 모두가 핏대를 세우고 악을 질러 댔다면 실제 사건이 주는 중압감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인물의 복잡한 심리묘사를 가장 잘 해내기로 정평난 이병헌은 역시나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었다. 전반부의 김규평은 참으로 무색무취한 사람이다. 그러나 러닝타임과 함께 고조되는 감정, 일그러지는 표정, 총성과 함께 폭발하는 절규를 감탄스러운 연기로 보여 주었다. 모든 캐릭터의 이병헌화가 아닌, 모든 이병헌의 캐릭터화를 다시 한번 입증해냈다.
박통역의 이성민 역시 너무나 훌륭한 연기를 보여 주었다. 분장에 공을 들였다는 얘기 따위는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절대자의 무게감과 공허함이라는 감정은 누군가로부터 배울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켜켜이 쌓여서 배겨진 내공이 아니고서는 캐릭터에 눌려서 악다구니를 지르는 괴팍한 노인네만 남게 되는 것이다. 황정민과 호연한 『공작』에서 보여 주었듯이 시대극의 캐릭터를 텍스트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구현해내는 이성민의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스포가 의미가 없다. 역사가 이미 스포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결과는 전 국민이 다 알겠지만, 당사자의 속마음은 본인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 수 있을까? 또한 당사자가 어째서 그런 속마음을 갖게 되었는가는 그 주변인이 아니고서는 또 알 수가 없는 것들이다. 감춰진 진실들까지 충실하게 탐사해낸 김충식의 원작과 그것을 훌륭하게 영상화해낸 우민호의 집념은 지난 역사를 언제고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훌륭한 미디어로 재탄생시켰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역시나 모두 가졌을 의문이 남는다. "그때 김재규가 육본이 아닌, 중정으로 차를 향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지않은 길에 대한 추정을 해보는것이 시대극의 가장 큰 재미가 아닐까 한다. 간만에 즐거운 관람 이었다.
PS) 같은 사건을 다뤘지만, 블랙코미디 장르로 구현해낸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 전두환 본인도 만족했다는 후문이 전해지는 드마라 『제5공화국』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